[폴란드 삼형제 출산기 ①] 코로나 시국, 피범벅 응급 제왕절개로 만난 첫째

폴란드에서 세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 셋 모두 임신부터 출산까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를 세 편의 시리즈로 나누어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국, 첫째 아이를 폴란드에서 출산 한 이야기 입니다.

1. 코로나 시국 중 결혼과 임신 성공

2018년 여름,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 일하던 저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현재의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께 인사드렸습니다. 2019년 여름, 폴란드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다행히 금방 취직할 곳을 찾아 적응해 가던 2019년 11월, 불청객처럼 찾아온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가 일상이 되었죠. 2020년 6월에 결혼하기로 했던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일정이 미뤄지며 2020년 10월에 20명의 하객만 초대하여 작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몇주 후에 저희 부부에게 첫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생리가 불규칙해 난임 걱정이 커질 무렵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배란테스트기 덕분에 3개월 만에 임신에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타국에서의 임신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습니다.

2. 폴란드에서는 한국식 임당검사 불인정

초기에는 회사 사립보험(Enel-med)을 이용했지만, 언어 장벽과 담당 의사와의 불협화음이 컸습니다. 결국 주변의 추천을 받아 개인 의원으로 병원을 옮겼습니다. 한 번 진료에 200~1000즈워티가 드는 큰 지출이었지만, 영어가 자유로운 유능한 여의사를 만나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임신 중 한국 방문을 방문했었는데, 한국의 임신성 당뇨 검사는 글루코즈를 먹고 1시간 후에 체크하는 선별검사 방식입니다. 폴란드에 돌아가서 임당검사를 통과했다고 얘기했더니, “한국식 검사는 폴란드의 기준에 맞지않다.”라며 임신성 당뇨의 판정기준으로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글루코스를 마시고 0시간, 1시간, 2시간 뒤 채혈하는 재검사를 지시했습니다. 당연히 통과할 줄 알고 검사 중 침대에서 편하게 잠까지 잤는데, 결과는 ‘임신성 당뇨 확진‘. 다행히 식단 관리로 조절할 수 있는 범위였습니다.

3. 분만실 밖으로 소리치며 뛰어나간 이유

2021년 6월 예정일이 다가와도 소식이 없자 입원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임신성 당뇨의 경우 임신 기간이 길어지면 태아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당시 엄격한 코로나 방역으로 남편은 면회는커녕 출산 순간에도 함께할 수 없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병원생활은 외로운 감옥 생활 같았습니다.

입원 후 3일 동안 KTG(태아 안녕 검사, CTG)를 달고 지냈습니다. 의료진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카테터 삽입으로 유도분만을 시도했으나 출혈로 중단했습니다. 다음 날 프로스타글란딘으로 화학적 유도를 시작했습니다. 자궁 수축이 오는 게 느껴졌고 간호사가 확인하더니 깨끗하고 넓은 분만실로 옮겨 줬습니다. 마취가스를 마시며 짐볼 위에 앉아 있을 땐 모든 게 순조롭게 느껴졌습니다. 여유로워서 분만실이 어떤지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며 남편과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았을 정도입니다.

갑자기 하반신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양수가 터졌나?’ 하고 의료진 호출 버튼을 눌렀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아 속옷을 확인한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습니다. 투명한 양수가 아닌 붉은 피와 혈전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호출 버튼을 한 번 누르고, 또 한 번 누르고…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분만실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의료진을 붙잡고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짧은 폴란드어를 외쳤습니다.

“Krwi! (피예요!)”

저에게 방으로 가서 기다려 달라고 했고, 바로 담당 간호사가 왔고, 피를 확인하자마자 의사를 부르러 갔습니다. 다행히 수술 가능한 의사가 빠르게 와서 응급 제왕절개가 결정되었습니다. 출혈의 공포 속에서 떨리는 손으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폴란드어 동의서에 서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들것에 실려 수술실로 직행했습니다.

4. 30분만에 엄마가 되었다

수술실에 들어서자 어떤 젊은 의료진이 저를 향해 “Usiąść! Usiąść! (앉으세요)”라고 말하더니 점점 언성이 높아지더니 소리를 크게 질렀습니다. 앉으라는 폴란드어 명령어 ‘Siadaj(앉아 – 아이 훈육시 또는 애완견에게)’만 겨우 알고 있던 저에게 낯선 단어 ‘Usiąść’는 큰 혼란을 줬습니다. 수술이면 당연히 눕는 줄만 알고 자꾸 누우려했던 저에게 의료진이 답답해서 소리친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 정신이 없었는데 의료진이 소리까지 지르니 눈물이 찔끔나고 화가 났습니다. “폴란드어를 모른다고요!”하고 저도 같이 소리 질러버렸네요… 그때 한 연배 높은 의사 선생님이 다가와 투박한 영어로 설명해 줬습니다.

“Sit, please. Needle to spine. (앉아주세요. 척추에 주사.)”

척추마취를 하는 동안 저의 긴장을 풀어주려는지 영어를 썼던 의사분이 계속 질문을 했습니다. 폴란드 온지는 얼마나 됐는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잠시 출산, 출혈, 수술 같은것에서 벗어나 다른 것에 대해 대화를 유도해서 저를 진정시켰던 것 같습니다.

14:30 — 수술대에 누움
14:45 — 첫째와 만남
15:00 — 수술 종료

신기하게도 정말 30분 만에 끝났습니다. 며칠간 입원해 겪었던 고통이 무색할 만큼 허무하면서도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의료진이 “자, 여기 당신의 아기입니다.”하고 보여주는데 얼떨떨했습니다. 뱃속에 있다가 갑자기 배 밖으로 나온 게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뭘 해야하나요?” 물어보니 의료진이 친절하게 말해 줬습니다. “아기에게 인사하고 뽀뽀 세 번 해주세요. 그 후에 우리가 아기가 건강한지 검사하겠습니다.”

5. 첫째를 만난 기쁨도 잠시, 이제부터 진짜였다

저는 수술 후 회복실로 옮겨졌습니다. 얼떨떨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으니 아기가 검사를 마치고 제게로 왔습니다. 마취가 풀리지 않은채 누워있던 저에게 간호사가 캥거루케어를 할 수 있도록 아기를 가슴 위에 올려주었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간호사들이 아기를 데려가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기 침대에 눕혀주며 저에게는 휴식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반신 마취가 풀리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왔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였습니다. ‘총을 배에 맞으면 이런 아픔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간호사를 불러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현재는 아세트아미노펜이 투여되고 있고, 필요하면 모르핀 투여가 가능하다고 하여 빨리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센 진통제를 맞고 나서야 겨우 진정될 수 있었습니다.

회복실에서 7시간이 지나자 일반실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걸어갈지 휠체어를 탈지 선택할 수 있었는데, “지금 걷는 것이 수술 부위 유착 방지에 가장 좋다”는 말에 있는 힘을 쥐어짜 내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일반실은 다인실이었고, 하필 그해 가장 더웠던 여름을 병원에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출혈과 응급 제왕절개 여파로 아드레날린이 샘솟았는지 잠은 오지 않았고, 아기가 원할 때마다 밤새 젖을 물렸습니다. 새벽에 찾아온 간호사가 아기를 본인이 안아줄테니 눈을 붙이라고 따뜻하게 건네준 한마디가 참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맞이한 출산 다음날 아침, 산모와 아기를 점검하던 간호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밤새 아기 기저귀를 한 번도 갈아주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저는 완전 깜박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간호사는 친절하게 “보통 2~3시간마다 수유할 때 기저귀를 먼저 체크하고 갈아주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알려주었습니다.

6. 서러웠던 퇴원 지연, 3시간 수유 텀의 굴레

슬프게도 제왕절개 여파로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고, 3일간 아기의 체중이 10% 감소하자 병원에서는 퇴원 연장과 분유 보충을 권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말도 안 통하는 폴란드 병원에서 남편 없이 겪었기 때문에 저는 퇴원일만 목 빠지게 기다렸었습니다. 그날 집에 갈 수 없다고 해서 서럽게 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그랬더니 의사가 진정할 시간을 줬고, 다시 간호사가 와서 설명해 줬습니다. 집으로 너무 가고 싶으면 아기의 건강을 산모가 책임진다는 서약서를 쓰고 나갈 수 있다고. 당연히 아기의 건강이 우선이었기에 마음을 다잡고 퇴원이 계속 지연되더라도 아이가 건강하다는 확신을 갖고 집에 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행히 분유를 먹이자 아이는 금세 살이 차올랐습니다.

퇴원 후 시작된 일상은 그야말로 ‘좀비 모드’였습니다. 수유(30분) → 유축(30분) → 기저귀 갈기 → 유축기 세척을 거치면 바로 다음 3시간 수유 텀이 돌아왔습니다.

폴란드 시스템에 따라 지정 병원(Przychodnia)에 방문 산후조리사를 최대한 빨리 올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산후조리사도 긴급한 일임을 이해하고 추후 방문 일정을 2~3일 간격으로 정했습니다. 아이의 체중증가가 중요한 이슈였기에 신생아용 체중계를 가져와 매번 재었습니다. 다행히 1주가 지나자 아이의 몸무게가 평균의 2배 속도로 자라는 것을 확인해 준 뒤에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약 한 달간의 독한 보충 수유 끝에 완모에 성공했습니다. 수유와 유축의 무한 굴레였습니다. 저도 먹고 씻고 잠도 자야하는데… 세 시간마다 돌아오는 수유타임이 얼마나 야속하던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사태 덕분에 남편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습니다. 회의와 업무 중간중간에 제 밥을 챙기고, 제가 수유하는 동안 밥을 입에 넣어주고, 새벽에 출출하고 목이 마를까봐 수박을 잘라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한 달 동안 우리 둘 다 제대로 잔 날이 있었나 싶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첫째 아이 육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게 아이 셋을 키우는 긴 여정의 시작일 줄은요.

다음 편에서는 둘째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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