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집에서 자라는데 왜 이렇게 다를까?|다중언어 두 아이의 언어 발달 이야기

지난번 다중언어 가정의 언어 규칙 이야기에서 이어, 한국-폴란드 국제결혼 가정에서 자라는 저희 두 아이의 언어 발달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앞서 소개했듯 저희 집의 언어 환경은 이렇습니다. 엄마인 저는 한국어, 아빠는 폴란드어, 부부 사이에서는 영어를 사용합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세 가지 언어를 듣고 자랍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같은 집에서 같은 언어를 듣는 첫째와 둘째의 언어 발달 속도가 꽤나 달랐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말을 꽤 빨리 시작했습니다. 반면 둘째는 24개월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단어를 거의 말하지 못했습니다. 첫째를 키울 때는 언어 발달에 대해 크게 걱정해본 적이 없었는데, 둘째를 키우면서는 처음으로 ‘언어 발달을 기다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환경에 놓여 있다고 해서 아이들의 언어 발달 속도가 같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1. 첫째 아이: 22개월에 시를 읊다

첫째는 22개월 무렵 이미 말을 꽤 잘했습니다. 두 단어를 붙여 “할미 좋아” 같은 표현도 했고, 어린이집에서 배운 폴란드어 시를 외워서 읊기도 했습니다. 물론 시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했다기보다는,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듣고 소리와 순서를 기억해 반복하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한 번 들은 말을 따라 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고, 반복해서 들으면 금방 익혔습니다.

그때는 저도 별생각 없이 ‘이게 보통 언어 발달 속도인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둘째를 키워보니,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가 약 2.5세가 될 무렵에는 대화 상대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에게는 한국어로, 아빠에게는 폴란드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가 잘 이해하고 따라오는 것 같아 만 3세 쯤에 존댓말도 가르쳐 봤습니다. 폴란드어와 영어에는 없는 개념이라 그런지 아이는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아이는 자기는 존댓말을 쓰는데 왜 엄마는 자기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존댓말 가르치기는 잠시 미루기로 결정했습니다.

4세부터는 한글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토요일을 기다릴 정도로 즐겁게 다녔는데, 어느 순간 존댓말을 섞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처럼 어떤 관계에서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 같았습니다.

5세 때 한국에 2주간 다녀왔는데, 한국어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발음이 좋아졌다고 느꼈습니다.

아이는 폴란드어를 현지 아이들처럼 구사하고, 한국어 실력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어 뿌듯합니다. 하지만 사고가 깊어지고 표현력이 늘면서 적절한 한국어 단어를 찾는 것을 어려워할 때가 생기고 있습니다.

아이가 폴란드어로 설명하면 제가 한국어로 바꿔주고, 아이가 그 한국어를 따라해보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이가 쓰는 폴란드어를 이해할 수 있어 한국어로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가끔은 저도 모르는 폴란드 단어가 나오기도 합니다. 처음엔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최근엔 제가 아이에게 “이 단어 뜻이 뭐야?”라고 물어보기 시작했고, 고맙게도 아이는 최대한 풀어서 쉽게 설명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아이의 언어 발달과 저의 폴란드어 숙달이 함께 이루어지는 다중언어 가정입니다.

2. 둘째 아이: 말이 늦게 트이다

첫째 아이가 이렇게 언어를 빠르게 습득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둘째 아이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아이는 24개월이 지나도록 말할 수 있는 단어가 많지 않았습니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주로 사용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걱정이 들었습니다.
‘혹시 언어 발달이 늦은 건 아닐까?’
‘세 언어가 섞인 환경 때문일까?’
‘언어치료를 받아봐야 하나?’

그래서 어린이집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다행히 선생님은 아이의 여러 발달 영역에서 특별히 걱정되는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중언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인 만큼 조금 더 지켜보면서 기다려볼 수 있겠다고 했습니다. 조금 더 지켜본 후에 변화가 없을 경우, 어린이집에 상주하시는 언어치료사(logopeda)에게 상담을 받아보는 것을 권유했습니다.

어린이집마다 다르겠지만, 저희 어린이집에는 언어치료사가 주기적으로 아이들이 활동하는 중에 반에 들어가서 관찰하고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다고 들었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했더니 언어치료를 다닌 여러 가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폴란드 부부는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는데, 두 아이 모두 2.5세까지 할 수 있는 단어가 3개 정도였고 그 때부터 언어치료를 받으러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3세가 지나자마자 남매 둘 다 갑자기 긴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가장 신기했던 건 언어치료의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언어치료라고 하면 단어를 가르치거나 발음을 교정하는 정도를 생각했는데, 그 아이들이 받았다는 치료에는 혀로 이를 닦는 연습이나 입을 오므렸다 펴는 연습 같은 활동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부모가 매일 집에서 함께 연습했다고 하더라고요.

‘무’와 ‘피츄’에 담긴 둘째 아이의 적응기

말이 터지기 전, 소통의 답답함을 보여주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던 분이 우리집의 둘째 아이 내니로 종종 와주고 계십니다. 둘째 아이는 목이 마를 때 “무(물)”이라고 하는데, 선생님이 오신 날 선생님께 “무(물)”을 달라고 했더니 “Moo(소의 울음소리)?” 라고 물으신 겁니다. 아이가 “니에(아니요)! 무!”라며 답답해하길래 제가 한국어로 ‘물’이라고 알려드렸더니, 선생님이 둘째 아이 반 선생님들께 전달해야겠다며 메모해 가셨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게 단순히 ‘아직 말을 못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구나. 아이에게는 분명 필요한 것이 있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선생님에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어린이집에서 꽤 답답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피츄!”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피자? 피카츄?”라며 물었는데, 알고 보니 물을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아이가 폴란드어로 물(Woda)은 발음이 어려우니, 스스로 말하기 쉬운 ‘마시다'(Pić, 피치)라는 단어에서 자기만의 표현을 찾아낸 것 같았습니다. 아이만의 귀여운 생존 전략이었죠.

그렇게 조금 더 기다려보니, 26개월부터 단어를 조금씩 따라 했고, 29개월인 지금은 하루하루 새로운 단어와 두세단어를 조합한 문장이 폭발적으로 터지고 있습니다!

3. 엄마의 변화: 병렬 언어 지도법

첫째 때나 둘째 때나 한국어 노출을 위해 제공해 주는 것은 동일합니다. 한국어로 TV 보여주기, 책 읽어주기, 노래 들려주기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둘째 아이를 키우며 달라진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엄마인 저의 폴란드어 실력이 늘었다는 점입니다! (웃음)

첫째 아이가 어렸을 때는 제가 아주 간단한 폴란드어만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한국어, 아빠는 폴란드어라는 원칙을 꽤 단순하게 지켰습니다. 또 첫째 아이의 발화가 빠르고 폴란드어에 능했기에 오직 한국어 노출을 늘리는데 집중했었습니다.

반면, 둘째 아이는 최근에 조금 다른 전략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말해주면서 어린이집에서 유용하게 쓸 만한 단어들은 폴란드어로 같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둘째 아이가 말을 잘 하지 못했을 때 의성어, 의태어로 소통했기 때문에 의성어, 의태어도 대부분 폴란드어로 가르쳤었습니다.

아이가 집과 어린이집 양쪽 환경에서 모두 유연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엄마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셈입니다.

글을 마치며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같은 언어에 노출되고, 비슷한 방식으로 길러지고 있을 텐데 아이의 언어 발달이 이렇게 다릅니다. 언어뿐만이 아닙니다. 첫째 아이가 말이 빨랐다면 둘째 아이는 10개월이 되자마자 혼자 걷기 시작했습니다. 관심사도 첫째 아이는 로봇과 히어로, 둘째 아이는 동물과 소방차로 완전히 다릅니다.

각각의 아이는 정말 각자의 속도와 방향을 가지고 자라는 것 같습니다.

다중언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를 보며 조바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혹시 다언어·다문화 환경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라고 생각이 들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마다 스스로 되뇌이려고 합니다. 각각의 아이는 독립적인 개체라 나와도 다르고, 남편과도 다르고, 형제들끼리도 다르다는 것을. 이제 7개월이 된 셋째 아이는 또 어떤 발달상의 특징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도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 한 걸음씩 함께 걸어가는 모든 다중언어 부모님들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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