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성과 이름을 사용하는 방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이름 두 글자에 성 하나를 붙여서 부르는 것이 익숙합니다. 반면 유럽에 살다 보면 이름을 부르는 방식도 다르고, 성씨를 사용하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폴란드 이름도 생각보다 재미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외국 이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폴란드에서 생활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직장 생활도 하고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보는 과정을 겪다 보니 한국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꽤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국인의 입장에서 들으면 이름 하나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폴란드 이름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누어 적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글에서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내가 폴란드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이름의 특징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두 번째 글에서는 조금 더 깊게 들어가 폴란드 이름에 숨어 있는 언어와 문화적인 특징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1. 한국에서는 ‘김씨’, 폴란드에서는 ‘안나’?
한국은 성씨의 종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김, 이, 박 씨가 전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다 보니, 사람을 구분할 때 ‘성’보다는 독창적인 ‘이름’에 훨씬 무게를 둡니다. 물론 한국에도 흔한 이름이 많지만, 요즘은 아이 이름을 지을 때 ‘조금은 특별한 이름’을 고민하는 경우도 많이 보입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성까지 붙여 부르기도 합니다.
반면 폴란드는 반대입니다. 성씨(Nazwisko)의 종류가 수만 가지로 굉장히 다양하고 유니크한 반면, 이름(Imię)은 안나(Anna), 피오트르(Piotr), 얀(Jan)처럼 자주 쓰이는 전형적인 이름들이 정해져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이름을 통해 사람을 구별하고 기억한다면, 폴란드에서는 성씨로 사람을 구분하고 식별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누군가가 “김 씨!”라고 부르면 주변에서 여러 명이 돌아볼 수 있습니다.
폴란드에서도 흔한 이름은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Anna 같은 이름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름 중 하나라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 “Anna!” 하고 부르면 여러 명이 동시에 반응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폴란드에서는 이름만 듣고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성과 이름을 함께 듣게 되고, 그때야 “아, 그 사람!” 하고 알아듣게 됩니다.
첫째 아이가 유치원 친구를 이야기 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같은 반에 스테판(Stefan)이 두 명이라서 그 두 아이를 설명할 때만큼은 성까지 붙여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름이 흔하다는 것이 실생활에서 어떤 의미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2.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르는 문화, 그리고 요즘의 변화
다른 서구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폴란드에서도 전통적으로 결혼을 하면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본래의 성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기존 성과 남편의 성을 함께 쓰는 ‘병기 표기(Hyphenated surname)’를 선택하는 케이스가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로는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커리어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학술 논문에 동일한 이름으로 연구 실적을 쌓아야 하거나, 전문직으로서 이미 구축해 놓은 본인의 인지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족관이나 행정적인 편의 때문에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변에 흥미로운 케이스가 있습니다. 제 친구의 경우에는 아내 쪽에 자매만 있고, 그 성씨를 이어갈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고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의 성을 자신의 성에 추가하고, 자녀도 병기 표기하는 방식으로 가족의 성씨를 보존하기로 했습니다.
저의 경우는 본래의 성을 유지하고 자녀들의 성을 병기 표기하는 것으로 선택했습니다. 우선 저는 한국 방식으로 제 성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제 정체성을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추가적으로 여권이나 은행 등에 제 이름을 변경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성씨가 달라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들어서 아이들은 병기 표기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3. 우리나라의 ‘홍길동’ 같은 대표 이름은?
그렇다면 폴란드에서 우리나라의 홍길동이나 김철수처럼 흔한 이름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무엇일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Jan Kowalski를 떠올릴 것입니다. Jan은 폴란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남자 이름이고, Kowalski 역시 아주 흔한 성씨입니다.
한국에서 ‘홍길동’이라고 하면 실제 주변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의 이름이라기보다는, 문서나 예시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이름이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Jan Kowalski가 그런 역할을 합니다. 은행 서류나 예시 문서에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 때도 등장하고, 어떤 사람을 특정하지 않고 ‘아무개’처럼 이야기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처음 이 이름을 알았을 때는 “아, 폴란드에도 홍길동이 있구나.” 싶어서 재미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남성은 얀 코발스키(Jan Kowalski), 여성 예시로는 안나 코발스카(Anna Kowalska)를 들 수 있습니다. 둘 다 흔한 이름과 성씨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한국의 김철수나 김영희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4. 한 사람인데 불리는 이름이 왜 이렇게 많을까? (애칭의 세계)
폴란드에 처음 와서 사람들의 이름을 들으면 또 하나 헷갈리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히 같은 사람인데 이름이 계속 달라집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Anna(안나)였는데 다른 사람이 Ania(아냐)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Anka(안카)라고 부릅니다. “어? 다른 사람인가?” 싶어서 확인해 보면 같은 사람입니다.
폴란드에서는 본명뿐 아니라 애칭이나 축소형(zdrobnienia)으로 부르는 경우도 흔합니다. 서양권에 이런 문화가 흔하다고는 하지만, 폴란드의 애칭은 원래 이름과 너무 다르게 변형되어 처음 들으면 같은 사람을 부르는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 참고로 아래 한글 표기는 이해를 돕기 위한 대략적인 발음입니다. **
- 여성 이름 예시
- 안나 (Anna) → 아냐(Ania), 안카(Anka), 아네츠카 (Aneczka), 아눌카 (Anulka)
- 막달레나 (Magdalena) → 마그다 (Magda), 마지아 (Madzia), 마그두샤 (Magdusia), 막달렌카 (Magdalenka), 마쥬냐 (Madziunia)
- 알렉산드라 (Aleksandra) → 올라 (Ola), 올카 (Olka), 올렌카 (Oleńka)
- 마우고쟈타 (Małgorzata) → 고샤 (Gosia), 마우고샤 (Małgosia), 마우고쉬카 (Małgośka), 고쉬카 (Gośka), 고셴카 (Gosieńka), 고슈냐 (Gosiunia)
- 아그니에슈카 (Agnieszka) → 아가 (Aga), 아구샤 (Agusia)
- 요안나 (Joanna) → 아샤 (Asia), 아쉬카 (Aśka), 아슈냐 (Asiunia)
- 남성 이름 예시
- 얀 (Jan) → 야넥 (Janek), 야시 (Jaś), 야셱 (Jasiek), 야네쳭 (Janeczek)
- 야쿱 (Jakub) → 쿠바 (Kuba), 쿠부시 (Kubuś)
- 크시슈토프 (Krzysztof) → 크즈셱 (Krzysiek), 크즈시 (Krzyś), 크즈시오 (Krzysio)
- 프란치셰크 (Franciszek) → 프라넥 (Franek), 프라뇨 (Franio), 프라누시 (Franuś)
- 스타니스와프 (Stanisław) → 스타셱 (Stasiek), 스타시 (Staś)
- 타데우시 (Tadeusz) → 타덱 (Tadek), 타죠 (Tadzio)
처음에는 이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모든 이름이 변형되는 것도 아니고, 또 일정한 형태로 변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영어권에서 Robert를 Rob이라고 부르는 정도라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데, 폴란드에서는 원래 이름과 애칭의 모양이 생각보다 크게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폴란드에 온 사람에게는 이름을 외우는 것 자체가 작은 숙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항상 애칭으로 불리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비즈니스 관계나 공식적인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정식 이름대로 부르는 것이 안전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친근해 보이려고 무조건 애칭부터 사용했다가 오히려 실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즈니스 관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정식 이름을 부르고,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경우에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는 상대방이 어떻게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살펴보는 편입니다.
5. 한국 사람들이 들으면 빵 터지는 폴란드 이름들
한국어 발음과 묘하게 맞아떨어져서 한국인 입장에서 들으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애칭이나 이름들도 있습니다.
- 아냐 (Ania): 안나의 애칭. 한국어로 “아니야(No)”처럼 들립니다.
- 모냐 (Monia): 모니카의 애칭. “뭐냐?”처럼 들립니다.
- 마쟈 (Madzia): 막달레나의 애칭. “맞아”처럼 들립니다.
- 도마 (Doma): 도미니카의 애칭. 요리할 때 쓰는 칼도마가 생각납니다.
- 타죠 (Tadzio): 타데우시의 애칭. 동물 타조가 생각납니다.
- 헤뇨 (Henio): 헨리크의 애칭. 제주도의 해녀가 생각납니다.
- 베뇨 (Benio): 베냐민의 애칭. 한국어 어감이 다소 난감합니다.
6. 외국인이 겪은 소소하고 웃긴 에피소드
외국인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폴란드 이름 때문에 생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종종 나옵니다.
- 한 한국인이 폴란드에서 누군가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중국어 인사라고 생각해 기분이 나빴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부른 것은 폴란드 남자 이름 **Michał(미하우)**였다고 합니다. 폴란드 사람에게는 평범한 이름이지만, 폴란드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말처럼 들릴 수 있는 것이죠.
- 또 다른 외국인 커뮤니티 글에서는 누군가 “왜 폴란드 강아지들은 이름이 다 ‘홋치’인 것 같지?”라는 의문을 남겼습니다. 알고 보니 사람들이 강아지를 부를 때 반복해서 말하던 것은 이름이 아니라 폴란드어 chodź였습니다. ‘이리 와’, ‘와’ 정도의 뜻을 가진 말이죠. 강아지 이름이 모두 홋치였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강아지에게 계속 “이리 와!”라고 말하고 있었던 겁니다.
7. 국제결혼 가정에서 생기는 아기 이름 고민
국제결혼 가정에서는 아이 이름을 정하는 일도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한쪽 나라에서는 예쁘고 자연스러운 이름이 다른 쪽 나라에서는 발음하기 어렵거나 전혀 다른 어감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쪽 언어에서 모두 부르기 쉽고 자연스러운 이름을 찾는 것은 국제커플이 겪는 작은 고민 중 하나입니다.
저희 집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들만 셋을 키우는 저에게 시어머니께서는 셋째 이름으로 Jaś를 여러 번 추천하셨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들리는 이름이지만, 한국인인 제 귀에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아이 이름 하나를 정할 때도 한국어와 폴란드어를 동시에 생각해야 했습니다.
저희의 경우에는 아래의 기준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 한국어로 불렸을 때 두 음절로 자연스러운 폴란드어 이름을 찾기
- 가능하다면 한국 돌림자처럼 형제들의 이름에 공통점 만들기
마무리
폴란드에 살기 전에는 이름이 그냥 사람을 부르는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생활해 보니 이름 하나에도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가 꽤 많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떤 이름이 흔한지, 어떻게 줄여 부르는지, 결혼하면 성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외국에서 이름을 어떻게 바꾸어 사용하는지까지 생각해보면 이름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제가 폴란드에서 생활하며 느낀 이름의 특징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 봤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내기에는 폴란드 이름 이야기가 조금 아쉽습니다. 더 깊은 폴란드어 특징과 문화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조금 더 깊게 들어가 폴란드 이름에 숨어 있는 언어와 문화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