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때는 모든 게 서툴러서 두려웠고, 둘째 때는 이직과 VBAC 도전으로 정신없이 지나갔다면, 셋째는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뜻밖의 선물’ 같은 존재였습니다.
둘째가 돌쯤 되었을 때 시작된 잔병치레로 체력도 마음도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서프라이즈로 우리에게 와 준 셋째. 당시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모든 타이밍이 신기할 정도로 딱딱 맞아떨어졌던 복덩이였습니다. 단 3시간 만에 세상에 나와 온 가족을 웃게 만든 셋째 출산 이야기, 그리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던 날의 생생한 기록을 풀어봅니다.
아직 이전 출산기를 못 보신 분들이라면 이 링크를 따라 한 번 읽어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1. 둘째의 잔병치레, 그리고 정신없던 나날들
둘째 아이가 돌이 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쯤 단유를 진행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단유와 아이가 자주 아팠던 것이 관련이 있었던 건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2024년 4월, 어린이집에 가기도 전부터 시작된 감기는 중이염으로 번졌습니다. 4월부터 8월까지 무려 5번이나 항생제를 먹어야 했습니다. 밤마다 콧물이 심해 숨이 막히는지 아이는 매일 울면서 깼습니다. 누우면 코가 더 막혔기 때문에 안아서 재우고 유모차를 태워 집 안을 돌며 재우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대로 잠을 잔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1년짜리 유급휴직이 끝나기 전, 회사에 무급휴직을 조금 쓰고 9월에 복귀하겠다고 통보했었습니다. 5월은 둘째의 어린이집 적응을 위해, 6~8월은 폴란드어 학원에 다닐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둘째가 너무 아픈 바람에 6월에 시작했던 학원은 반도 못 가고 결석하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7월부터는 폴란드어 학원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 보육에 썼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달, 생각지도 못했던 셋째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2. “말이 씨가 된다더니…” 운명처럼 찾아온 셋째
둘째 돌 무렵 단유를 하면서 생리가 다시 시작되었고, 산부인과에 가서 피임 상담을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우선 피임약을 처방받아 다음 생리 때부터 복용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추후 루프 시술도 고려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수유 후 생리가 불안정할 수 있다지만 6주, 7주가 지나도 생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 본 임신테스트기에는 선명한 두 줄이 떠 있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습니다. 저는 평소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경제적으로만 넉넉하면 아이를 셋도, 넷도 낳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정말 말이 씨가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아무런 계획 없이 임신이 된 상황에 얼떨떨해하며 혼란스러워했고, 저 역시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 피임을 뚫고도 임신이 될 정도의 운명이면 기꺼이 받아들이자며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3. 뜻밖의 구원, 폴란드의 임신 병가 제도
임신 테스트기가 두 줄로 뜬 당시 저는 회사의 무급 휴직 기간 중이었습니다. 복귀하기로 정한 날짜까지 두 달도 안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아픈 둘째를 두고 복직할 생각에 까마득했는데, 아기 심장 소리를 확인하자마자 상태를 ‘임신 중 병가’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임신 중 병가를 쓰면 월급의 100%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를 한참 가정보육하며 항생제를 먹이고 있던 시기였기에, 회사 복귀 대신 찾아온 이 휴식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경제적·시간적 부담을 덜고 온전히 아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게 된 뜻밖의 구원이었습니다.
4. 스펙터클했던 임신 기간과 소소한 해프닝들
둘째는 결국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알레르기 전문의를 찾아간 끝에 천식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치료를 시작한 후부터는 증상이 잘 조절되어 더 이상 항생제를 쓰지 않아도 됐습니다. 가끔 밤에 호흡곤란이 와서 기관지 확장제를 쓰기도 했지만, 점차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둘째를 케어하느라 녹초가 된 상태에서 받은 임신성 당뇨 검사에서는 수치 단 1 차이로 임당 확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안내받은 2시간 후 기준이 153이었는데, 제 결과는 154였습니다.하지만 이번엔 첫째 때와 달리 매번 바늘로 찌르는 방법 대신 2주마다 교체하는 센서가 보험이 된다며 의사가 권유했습니다. 24시간 혈당 변화를 어플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신세계였습니다. 식단에 신경을 쓰니 다행히 혈당 수치는 아주 안정적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일반 건강한 사람들 중에서도 상위권 수치이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갑상선 저하증도 약하게 다시 왔지만 최소 용량의 약을 먹으며 잘 유지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셋째 임신 기간 동안 저는 좀비처럼 항상 피곤하긴 했어도 크게 아픈 적은 없었습니다. 일이라는 부담 없이 집에서 둘째를 보살피며 틈틈이 쉴 수 있었던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산 예정일을 열흘 정도 앞둔 어느 낮, 눈앞에 이상한 무지개 같은 빛이 찌릿찌릿 번쩍이며 극심한 편두통이 찾아왔습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임신 후반기에 시야 이상과 심한 두통이 함께 나타나면 그냥 넘기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파에게 급하게 연락해 보니 임신부의 고혈압 응급 상황일 수 있으니 당장 혈압을 재보라고 했습니다. 이리저리 연락을 돌려서 혈압계를 가진 사람이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다행히 같은 아파트 단지 옆 건물에 사는 친구가 혈압계를 가져다 주었고 결과는 정상이었습니다. 산파는 그날 기압이 급격히 바뀌어서인지 본인도 편두통이 있었다며 혈압이 정상이라서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5. 3시간 만의 초스피드 순산과 ‘피검사’ 잔혹사
그날 저녁, 스멀스멀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셋째는 제발 낮에 낳자”고 장난처럼 말했었는데, 침대에 누울 때쯤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진통 강도가 아주 세진 않았지만 수축이 30분 동안 일정한 간격으로 매우 규칙적이었습니다. 둘째 때처럼 개인적으로 고용한 산파에게 전화했고, 산파는 “출산할 것 같으니 짐 싸서 오라”고 했습니다. 급히 시어머니를 불러 두 아이를 부탁드리고 밤 11시쯤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내진을 하니 이미 자궁문이 3cm나 열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임신 중 두 번의 혈액형 검사를 하고 그 두 결과지를 지참하여 출산병원에 와야 합니다. 하나는 준비되었는데, 두 번째 결과지의 수령일이 하필 다음 날이었던 것입니다. 진통은 점점 거세져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병원에서 피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느라 한동안 무통주사를 맞지 못하고 진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드디어 결과가 나오자마자 에피듀랄(무통 주사)을 맞았고, 순식간에 ‘무통 천국’이 찾아왔습니다. 새벽 2시쯤 되었을까, 산파가 자궁문이 다 열렸다고 했습니다. 무통주사 덕분에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해 다 열린 줄도 몰랐습니다. 경험이 있다 보니 산파의 지시에 맞춰 수축 시점에 힘을 주었습니다. 4번? 5번? 힘을 몇 번 주지도 않은 것 같은데, 산파가 “어어어 나온다! 힘 빼세요!” 하더니 어깨가 나오고 슉 하고 아기가 나왔습니다. 12시간이나 걸렸던 둘째 때와 달리 불과 3시간 만에 출산했습니다! 무통주사 중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힘을 줘서인지 치질도 전혀 없었고 회음부도 거의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6. 병원의 고요함,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날의 선물
남편은 능숙하게 탯줄을 잘랐고, 함께 캥거루 케어를 했습니다. 집에 있는 두 아이를 위해 남편을 먼저 집으로 보낸 뒤, 병실에 아기와 단둘이 남았습니다. 첫째, 둘째 아이들과 북적북적한 세상에 있다가 갑자기 고요하고 조용한 곳으로 뿅 하고 이동한 그 기분은 참 오묘하고 신기했습니다.
아기가 예정일보다 조금 일찍 나와 2.6kg으로 작았습니다. 빠는 힘이 부족했던 건지, 예정보다 이른 출산이라 제 몸이 준비가 안 된 건지, 분유 보충이 필요했습니다. 체중이 느는 것을 지켜봐야 해서 첫째 아이 케이스처럼 하루 더 병원에 머물렀지만, 이미 해 본 경험이 있어 능숙하게 아기를 돌볼 수 있었습니다.
퇴원하는 날, 둘째 때도 썼던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남편에게 미리 아이들 선물을 사두라고 한 뒤, “셋째가 형아들을 너무 보고 싶어서 선물을 준비했다”고 전해주는 이벤트였습니다. 제가 집에 도착하고 한 시간 뒤, 첫째와 둘째가 시어머니와 함께 하원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으면 엄마를 빼앗겼다고 느낄까 봐, 셋째는 폭신한 바닥 이불 위에 눕혀 두고 아이들이 내려다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셋째가 덮고 있는 이불 아래에 선물을 숨겨 두어 직접 들춰 보게 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첫째가 배시시 웃으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셋째가 우리한테만 선물 줬지롱~ 엄마는 못 받았지롱~”
셋째가 자기를 위해 선물을 가져왔다고 믿고 뿌듯해하는 그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빵 터졌답니다.
7. 세 아이의 엄마가 되며
출산 후 갑상선 수치는 다행히 정상으로 돌아와 약을 끊었습니다. 몸도 2주 만에 털고 일어날 만큼 회복이 빨랐습니다.
하지만 세 아이를 돌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육아였습니다. 둘째는 여전히 유치가 다 나지 않아 밤에 소리를 지르며 울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놀다가 셋째가 울어서 안아주면, 둘째도 울면서 안아달라고 합니다. 둘째가 아직 두 돌도 채 되지 않은, 한참 손이 많이 가는 아기인데 셋째가 태어나서 많이 안아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자주 듭니다.
현재 셋째가 8개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잘 기어다니는 셋째는 둘째를 졸졸 따라다니고, 둘째는 첫째를, 첫째는 셋째를 좋아합니다. 어제는 첫째 아이가 저에게 한국어로 ‘엄마는 왜 임신을 더 안 해?’라고 물어서 깜짝 놀랐답니다. 동생을 더 많이 갖고 싶다는 말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동생들을 예뻐해 주는 첫째가 고맙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없습니다.
뜻밖에 찾아와 단 3시간 만에 세상에 나온 우리 셋째, 그리고 여전히 사랑스러운 첫째와 둘째.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다섯 식구가 되었습니다. 세 아이와 함께 써 내려갈 앞으로의 나날들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