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삼형제 출산기 ②] 브이백(VBAC) 성공기: 12시간의 진통과 뜻밖의 기적

팬데믹 한가운데에서 외롭고 경황없이 첫째를 응급 제왕절개로 낳았던 첫 번째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둘째 아이의 출산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공포의 연속이었던 첫 출산과 둘째 출산은 달랐습니다. 치밀하게 공부하고 주도적으로 준비하여 맞이한 제왕절개 후 자연분만, 즉 브이백(VBAC; Vaginal Birth After Cesarean) 성공기이자 제 인생의 뜻밖의 기적을 만난 여정이었습니다.

아직 첫 번째 글을 못 보신 분들이라면 이 링크를 따라 한 번 읽어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1. 첫째 출산 후 찾아온 갑상선 저하증, 이직 직후 찾아온 둘째

첫째 아이를 낳고 난 뒤, 이상하게 늘 잠이 쏟아지고 몸이 무겁고 피곤했습니다. 단순히 육아 피로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갑상선 호르몬제인 Letrox(한국은 씬지로이드)를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몸이 따뜻해지고 활력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이 약을 평생 복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첫째가 돌이 지나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회사에 복귀했습니다. 그러던 중 새로운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수습기간이 끝난 지 딱 일주일 만에 임신 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 줄을 확인했습니다.

인터뷰 때부터 수습기간 내내 저는 제 상사와 팀원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더 높은 연봉을 제안받았던 다른 선택지까지 포기하고 고른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입사 3개월 만에 임신이라니… 나를 믿고 뽑아준 상사와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당시에는 재택근무 중이었고 상사와 동료들은 미국 및 유럽 다른 국가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원한다면 배가 부를 때까지 숨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기집과 심장박동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알렸습니다. 아직 임신 초기라 조심스럽지만, 상사를 그만큼 신뢰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혹시라도 어떤 상황이 생기더라도 팀이 미리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감사하게도 상사는 제 진심 어린 고백에 따뜻한 축하와 응원을 보내주었습니다.

2. 어린이집 바이러스부터 부비동염까지, 둘째 임신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둘째 임신 때는 첫째 때 매일 바늘로 찌르며 테스트해야 했던 임신성 당뇨도 없었습니다. 입덧도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둘째 임신은 다른 의미로 험난했습니다. 바로 어린이집에 다니는 첫째가 끊임없이 들고 오는 각종 감염병 때문이었습니다.

첫째가 가볍게 기침만 해도 저는 밤새 기침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첫째의 콧물이 조금만 심해져도 저는 부비동염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생전 처음 걸려 봤던 터라 코로 숨을 쉴 수 없는 게 이렇게 괴로운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결국 증상이 점점 심해졌고 항생제 치료까지 받았습니다.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신경치료를 했던 치아와 연결된 입천장에 갑자기 이상한 압박감이 들며 붓기 시작했습니다. 치과에 갔더니 임신 중에는 면역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강 상태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주사기로 염증을 빼냈지만 결국 계속 재발하여 또 항생제를 처방받았습니다.

몸이 계속 아프다 보니 업무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컨디션이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삼일정도 배뭉침과 통증도 이어졌습니다. 담당 의사는 출산 전까지 충분히 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낮잠을 자고, 물을 많이 마시고, 최대한 몸을 쉬게 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저는 임신 후반부에 접어들기 전 병가를 냈습니다.

3. “엄마 배는 내 힙시트!” 첫째와의 온전한 시간, 그리고 VBAC

비록 면역력 저하로 고생은 했지만, 입덧과 임당이 없다 보니 몸의 기동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둘째를 임신하면 첫째가 엄마에게 더 찰싹 붙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집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체력적 여유가 있을 때마다 첫째 아이를 마음껏 안아주었습니다. 볼록하게 나온 임산부 배는 아이를 얹어놓기 딱 좋았습니다. 거의 천연 ‘힙시트’였습니다.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았기에 주변에서는 당연히 둘째도 수술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연분만에 대한 미련과 의지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둘째는 VBAC(제왕절개 후 자연분만)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VBAC을 선뜻 권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와 위험성 또한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 자궁 파열 위험: 극히 드물지만 진통 중 이전 제왕절개 절개 부위가 터질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합니다.
  • 두 가지 출산의 단점 감수: 자연분만의 단점(회음부 손상, 치질, 요실금 등)과 제왕절개의 위험(장기 유착 등)을 둘 다 고민해야 하며, 만약 자연분만에 실패할 경우 진통은 진통대로 겪고 결국 응급 제왕절개를 하게 되는 ‘이중 고통’의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VBAC에 끌렸던 것은 확실한 장점들 때문이었습니다. 개복 수술을 피함으로써 얻는 빠른 회복력과 장기 유착을 더이상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는 것, 출산 직후 아기를 품에 안고 곧바로 모유 수유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무작정 도전하기보다 안전한 VBAC이 가능할지 담당 의사 및 출산할 병원의 산파와 상담했습니다. 또한 의학 논문과 가이드라인을 직접 찾아보며 공부했습니다. 조사해 보니 VBAC을 안전하게 성공시키기 위해 확인해야 할 핵심 조건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1. 이전 제왕절개 절개 방식: 자궁 상부를 세로로 째는 클래식 절개(Classical incision)가 아닌, 하부를 가로로 절개한 저위 횡절개(Low-transverse) 방식이었을 것.
  2. 과거 자궁 파열 경험: 이전 임신이나 출산 중 자궁 파열 기왕력이 없을 것.
  3. 출산 간격: 첫째 제왕절개 수술일과 둘째 출산일 사이의 터울이 최소 18~24개월 이상일 것.

저의 경우에는 첫째와 둘째 사이의 간격이 3년 가까이 되어 충분했고, 담당 의료진도 VBAC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참고로 당시에 찾아봤던 내용 중에는 자궁 하부 두께, 절개 부위 봉합 방식도 중요하다고 했었으나, 최신 의학계에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 요인으로 바뀌었네요.

그리고 언어장벽으로 큰 오해와 공포를 겪었던 첫 출산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어에 능통한 개인 전담 산파(Private Midwife)를 사비로 고용했습니다. 교대시간과 상관없이 제 출산 과정에 계속 함께해주고, 필요한 경우 병원 의료진과의 의사소통도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든든했습니다.

4.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구나” 예정일 전날 시작된 진통

첫째 때는 코로나 통제로 병원에 보호자가 들어올 수 없었기에 입원 기간 내내 혼자였습니다. 이번 출산은 남편과 전담 산파가 곁에 있을 거라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온전히 안정되었습니다.

출산 예정일 전날 저녁,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배가 살살 아파왔습니다. 남편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진통 측정 앱을 켜고 기록해 봤습니다. 통증이 들쭉날쭉했습니다. ‘가진통인가?’ 싶었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진통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개인 산파에게 문의하였습니다. 그랬더니 “VBAC 산모는 자궁 상태와 아기 상태를 KTG(영어로 CTG, 진통·심음 측정기)로 관찰해야 하니 즉시 병원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근처에 사시는 시어머니께 급히 연락드려 첫째 아이를 부탁드렸습니다. 시어머니가 오시는 동안 출산 가방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간단히 음식을 먹는 사이 진통의 강도가 급격히 세졌습니다. 어플에 기록할 정신조차 아득해질 무렵, 시어머니가 도착하셨습니다. 밤 11시경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 수속을 밟고 KTG를 단 후 자궁경부를 확인했습니다. 1cm가 열려 있었습니다. ‘벌써 이렇게 아픈데 겨우 1cm라니…’ 하는 아득함이 밀려왔습니다. 새벽 2~3시쯤 분만실로 옮겨졌습니다. 저의 전담 산파도 곧 도착했습니다. 진통이 심해질수록 남편이 허리를 마사지해 줬습니다. 미리 준비해 간 따뜻한 물주머니도 허리에 대봤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아쉽게도 당시 다른 산모들이 웃음가스를 사용하고 있어서 제가 원했던 웃음가스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5. 비명을 삼키며 성취한 VBAC, 그리고 반전의 치질 소동

자궁경부가 4cm 정도 열렸을 때 드디어 무통주사(Epidural)를 맞았습니다.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산파는 출산을 위해 체력을 아껴두라며 휴식을 권했습니다. 고통은 없었지만 자궁 수축의 파동은 느껴졌습니다. 얼마 후 산파가 양막을 터뜨렸습니다. 무통주사 투입을 줄이며 본격적인 힘주기 단계를 준비했습니다.

무통주사의 효과가 줄어들자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비명을 질러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소리를 지르면 힘이 분산되어 제풀에 지칠 수 있다는 말을 기억했습니다. 오롯이 호흡과 힘주는 타이밍에만 집중했습니다. 산파가 신호를 주면 온몸의 응축된 힘을 쏟아부었습니다.

몇 번 힘을 주고 나자 산파가 조금 쉬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극심한 고통 속에서 어떻게 쉬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 힘을 줄 수 있으니 빨리 낳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산파는 제 체력이 좋다고 칭찬하며 힘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밀어낸 끝에, 정오가 되기 몇 분 전 둘째 아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지 약 12시간 만이었습니다. 산파는 VBAC의 경우 몸의 메커니즘이 초산과 유사하기에 12시간 진통은 평균적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탯줄을 잘랐습니다. 아기를 가슴 위에 올리는 캥거루 케어(skin-to-skin time)를 진행하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첫째 때와는 달리 수술실도 아니었고 응급상황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폴란드어로 소리치는 일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출산 직후부터 초유가 순조롭게 돌기 시작했고 아기도 단번에 젖을 잘 물어주었습니다.

다만 제 몸에는 생각지도 못한 반전의 통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퇴원 후 집으로 찾아온 방문 산후조리사에게 “회복은 잘 되고 있는데 하반신 통증이 남아있다. 회음부 절개 부위가 잘 아물고 있는지 봐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제 상태를 진찰한 조리사님이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산모님, 회음부가 아니라 치질이 엄청 심하게 생겼어요!”

회음부 통증인 줄로만 알고 참았던 통증의 원인이 치질이었다니… 치질이 아플 수 있다니… 조리사님의 조언대로 구입한 좌약을 사용하고 좌욕을 병행하자 신기하게도 치질이 금방 나았습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며칠을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허무한 순간이었습니다.

6. 편안해진 육아와 내 몸에 일어난 뜻밖의 기적

첫째 때처럼 분유 보충을 하거나 밤새 유축기와 씨름할 필요 없이 둘째는 완모 수유가 순조롭게 이어졌습니다. 그랬더니 육아 자체가 거짓말처럼 수월하게 느껴졌습니다. 고난도 육아를 경험해서 그런 걸까요? 3시간마다 돌아오는 수유 패턴 속에서도 충분히 잠을 자고 일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출산 후 담당 의사의 권고에 따라 진행한 피검사에서 상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던 갑상선 기능 저하증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의 용량을 줄이다가 결국 단약을 진행했습니다. 3개월 후, 6개월 후 재검사에서도 수치는 정상을 유지했습니다. 이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는 “출산이라는 거대한 신체적 변화를 겪으며 몸 전체의 호르몬 사이클이 한 번 리셋되어 기존의 질환이 자연스럽게 완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외롭고 지쳤던 첫 번째 제왕절개의 기억을 딛고, 이번에는 직접 공부하고 준비해서 VBAC에 도전했습니다. 소중한 둘째 아들의 탄생은 저에게 자연분만의 기쁨과 함께 내 몸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험까지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로움도 잠시, 저희 부부에게는 또 한 번의 새로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셋째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다음 편에서 마지막 출산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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